본문 바로가기

복싱이 좋아

[생활체육복싱대회 D-7] 원정 스파링

생애 첫 원정 스파링 체험

대회 딱 일주일 남겨놓고 원정 스파링하러 분당으로 가게 되었다. 전전날까지 신청할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대회 전에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부담없이 경험해 보자고 마음 먹고 가기로 했다. 체육관의 중학생 친구들이 용감하게 신청했다고 해서 덩달아 용기를 낸 것도 있음.

성인보다 초, 중, 고등학생 친구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나는 같은 체급의 고등학생 선수와 매칭이 되었다. 낯선 링과 낯선 상대와 낯선 분위기.. 심장이 쫄깃하고 긴장되고 무섭고 그랬음. 관장님이 상대가 그리 잘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셨었는데 무슨 소리. 막상 옆에서 몸푸는 모습을 보니 키도 크고 길쭉길쭉하고 폼도 깔끔하고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속았어ㅠㅠ

 

챙겨간 복싱화 갈아신고 핸드랩 감고 쉐도잉으로 몸을 푸는데 같은 코리안 복싱 소속인데도 스파링이라는 조건 때문인지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분당에 있는 체육관을 빌렸는데 네온사인 조명에다 약간 좁고 어두운 분위기라서 더 긴장됐다(아니면 내가 긴장해서 그렇게 더 보였을수도). 떨렸지만 좋은 경험 한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만 했다. 나보다 앞서서 남자 성인 한 분이 하시고 두 번째로 링에 올라갔다. 같은 체급이지만 나보다 키 큰 여자 선수와 풀 스파링이라니! 대회 전 마지막 스파링이라고 생각하고 대회 경기 하듯이 진행했다.

 

긴장해서 그런지 발이 빨라지고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초반에 크게 카운터 훅이 들어가서 손 끝에 느껴지는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연습했던 파워 잽이 제대로 들어가는 것도 느껴졌다. 상대보다 반박자 빠르게 먼저 잽이 들어가니 반응이 더뎌졌었는데, 확실히 주먹도 강하고 맷집도 좋은 친구였다. 코너에 몰렸을 때 세게 한 방 맞고 나니 체력도 훅훅 빠지고 살기 위해서 발을 움직였던 것 같다. 나중에는 손도 안올라가고 몸이 너무 느려지는게 실시간으로 느껴져서 너무 힘들었다. 근데 그만큼 상대도 체력이 빠져서 결국에는 누가 끝까지 주먹을 내느냐 싸움으로 가더라. 크게 한 방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보다 잘게 쪼개서 여러번 툭툭툭툭 쳐주는게 훨씬 좋은 것 같다. 물론 카운터는 항상 각오해야한다...

 

민희 선수와 3분 2 라운드 진행, 좀 쉬고 후반부에 여자 선수들 4명 로테이션으로 진행해서 한 명당 1 라운드씩 더 했다. 민희와는 다르게 혜승, 서이는 풀스파링으로 할 수가 없었고 게다가 혜승이는 앞서 민희와의 스파링에서 코피가 나버리는 바람에 나랑 할 때 또 코피가 흘러서 더더욱 세게 칠 수 없었다. 코피 줄줄 나고 어지러워 하는 친구를 어떻게 때려ㅠㅠ 이미 서 있는 것만으로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결국 바디를 넣으라는 관장님 주문을 하나도 못 들어서 아쉽기는 하다. 사실 안하는게 아니라 못한거다. 실전에서 바디 맞추기가 아직 너무 어렵다.

 

 

 

첫 원정 스파링 피드백!!
❶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건 잽이다. 솔직히 잽 하나로 다 싸운 것 같다. 잽이 묵직하게 잘 들어가고 거기에 상대가 데미지를 입는게 보이니까 자신감이 생기긴 했다.

❷ 스트레이트가 잘 안나갔다. 어퍼도 의도적으로는 한 번도 못썼다. 스트레이트가 자꾸 훅처럼 나가니까 길게 치기 힘들었고 뒷손 타이밍도 잘 모르겠고? 그냥 카운터 치는 용도로 전락해버린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연타가 잘 안됐다는 것.

❸ 가드도 계속 떨어졌다. 지난 번 믿음이와의 스파링에서도 계속 뒷손이 떨어졌는데 역시 한 번에 고치는게 쉽지가 않구나. 가드가 좋지 않아서 허용한 주먹도 많다.

❹ 스텝이 좋아지다 보니 스텝을 사용해서 인 아웃을 하거나 돌면서 기회를 잡으려는 운영을 했었는데 결국 맞기 싫어서 나도 가까이 붙질 못했던 거였다. 인파이팅 상황에서도 상황을 이용해서 잘 만들어가야 하는데 계속 빠져버리니까 빠지다가 맞고, 애매한 거리에서 맞고ㅎㅎ 차라리 붙어서 펀치 내는 게 안전하다는 걸 몸소 느껴봐야겠다. 그러려면 뒤로 빠지지 말고 가드 단단하게 올린 다음 상대 주먹을 잘 소화해내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 여담

1. 시작할 때 준태가 '이모 화이ㅌ' 했다가 멈칫하고 '누나 화이팅'으로 바꿔준 것 같은데ㅋㅋㅋㅋㅋㅋ 졸귀

2. 1분 11초 진짜 개세게 맞아서 별이 보였음. 다시 봐도 진짜 어떻게 맞았는지 기억 안 날 정도였다.

3. 모지 생각보다 잘하네...?

4. 폴짝폴짝 신나보이지만 1분 지나서부터 급격하게 지친 상태임. 죽는 줄 알았음.

 

 

어후 너무 시간이 지나서 피드백 하려니 쉽지 않다. 어쨌든 눈 위에 멍도 들고 빡센 스파링이었다.

함께 상대해 준 생체 2회 우승자 민희 복서에게 감사합니다.

 

+ 강이가 건운사 필기보고 가답안이 바로 나와서 가채점을 했는데 합격선이었다!

원정 스파링 + 시험의 긴장감 회포를 기쁘게 풀 수 있었다:)